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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게 뭐 별건가요? ‘내 맘의 평화’면 되죠.
  • 2017.02.24.
-‘안락ㆍ아늑’ 덴마크發 휘게 열풍

-바쁜 한국인, ‘내 삶’ 점점 중요시

-친구와 홈파티ㆍ가치소비 추구

-일각에선 “헬조선 탈출구” 시각도



‘웰빙’이라는 키워드가 대한민국을 휩쓴 적이 있다. 곧바로 ‘로하스’, ‘힐링’ 열풍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육체적ㆍ정신적 건강을 따졌다면, 몇해전부터는 삶의 태도에 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킨포크, 미니멀라이프에 이어 2017년은 ‘휘게’다. 휘게는 덴마크어로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느리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친교활동이다. 이는 유난히 길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가족 및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과 사회적 관계가 중요한 데서 나왔다. 정치적ㆍ경제적 불안의 시대, ‘헬조선’이라 불릴 정도로 여유를 잃은 대한민국이 ‘휘게’를 갈망하고 있다. 



▶휘게, 뭐 별건가요?=자취 12년차. 32세의 미혼 직장인 민시영 씨는 ‘휘게’라는 단어를 알게 된 후 “의식적으로 휘게라이프를 지향하고자 한다”고 했다.

민 씨는 토요일 오전 10시 집 근처 도자기 클래스에서 도자기를 직접 굽는다. 손으로 도자기 반죽의 매끄러운 질감을 느끼고 나만의 도자기 디자인을 빚어 세상 하나뿐인 작품을 만든다. 지난 연말에는 이곳에서 만난 지인들과 홈파티를 열었다. 각종 과일이 뭉근해지도록 끓인 달콤한 뱅쇼 한 솥, 요거트와 크림치즈를 올린 카나페, 버터를 발라 황금빛으로 구워낸 노릇한 전복을 놓고 초를 켰다. 소박하지만 근사하게 꾸민 식탁에서 좋은 사람들과 작은 선물을 교환하며 추억을 만들었다.

민 씨는 “현실은 덴마크 사람들처럼 3시에 퇴근할 수 없고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지도 못하는 직장인이지만 시간을 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이러한 즐거움이 일과 관계의 스트레스와 같은 사소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고 했다.

‘휘게’에서 나아가 ‘라떼파파’ 바람도 불고 있다. 북유럽의 ‘라테파파’는 커피를 든 채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스웨덴 남자를 말한다.

결혼 6년차 김주혁(38) 씨는 5살 아들과 2살 딸 아이를 둔 가장이다. 그는 ‘휘게 라이프’(위즈덤하우스)와 ‘휘게 덴마크식 행복 라이프 스타일’(다름북스)를 연이어 읽고 북유럽 휘게문화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라떼파파’가 됐다. 일보다 가족에 집중하고 싶어 육아 휴직을 결정했다.

김 씨는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아빠’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라고 하니 TV, 술, 담배 등을 그렸는데 북유럽 아이들은 ‘웃는 얼굴’, ‘하트’를 그렸다고 한다. 내 아이에게 그러한 아빠로 기억되기 싫었다. 육아 휴직에 불을 지핀 결정적인 계기는 ‘SBS스페셜-아빠의 전쟁’을 보고 나서였다”고 했다. 그는 “부부가 함께 아이를 돌보면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었다. 아내가 일을 하고 있다해도 내가 휴직을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감내해야할 부분도 크다. 하지만 아이의 어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순간의 소중함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휘게, 가치 소비로 이어지다=북유럽 인테리어 열풍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여러 해 동안 북유럽 스타일,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표방한 중저가 카피제품들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 북유럽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홈퍼니싱 열풍이 뜨거워지면서 오리지널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용을 더 내더라도 오래 쓸 수 있고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가구와 소품을 사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의 디자이너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이 디자인하고 루이스 폴센(Lois Poulsen)에서 만든 ‘Ph5’ 조명은 북유럽 인테리어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대표 아이템으로 통한다. 국내가는 149만원. 덴마크의 1.5~2배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의 인테리어 후기에 심심치않게 등장하다. 2009년부터 루이스 폴센을 공식 수입해온 한샘넥서스에 따르면 2015~2016년 한해 동안 2.5배 매출 성장을 이뤘다.

스웨덴을 기반으로 한 북유럽 생활용품 온라인몰 ‘스칸디나비아디자인센터’는 지난 1월 신세계 쓱닷컴(SSG.com)에 전문관을 마련했다.

신세계몰의 박미연 과장은 “스칸디나비안디자인센터 기존 매출의 30%가 한국일 정도로 국내 소비자들의 북유럽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며 “전문관에서는 그릇을 비롯한 주방용품과 인테리어 소품의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소비도 늘고 있다.

그림 렌털 서비스 ‘오픈갤러리’는 고급 원화 그림을 작품 가격의 1~3% 수준의 비용으로 빌릴 수 있는 합리적인 서비스로 인기다. 한 번 계약을 맺으면 3개월 단위로 그림을 교체할 수 있다. 국내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약 8000~9000점 이상 거래하고 있으며 작품을 직접 선택하거나 전문 큐레이터가 집안 분위기와 고객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 서비스를 통해 추천받는다. 이용요금은 작품 크기에 따라서 월 3만9000원부터다. 오픈갤러리에 따르면 2014년 11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연 200~300% 이상 성장하고 있다.

‘2주마다 행복을 가져다드립니다’를 모티브로 하는 꽃 정기배송 서비스 ‘꾸까’도 2030 감성을 깨우는 소비로 주목받는다.

‘꾸까’는 영국 유학파 출신의 플로리스트들이 디자인한 꽃을 담아 직접 선별ㆍ제작해 만든 핸드 부케를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기존 7만~8만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에서 1만9900원이라는 혁신적인 가격을 내세운 핸드부케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꾸까는 창립 2년만에 한달 평균 정기 구독자수 4만명을 달성했다.

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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