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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민재 셰프의 삶…“프랑스요리, 내 운명임을 직감했죠”
  •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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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컥 오른 유학 후 프랑스요리 20년 외길
- 유학 후 잇단 실패로부터 값진 교훈 얻어
- “셰프의 마음가짐은 곧 음식의 맛을 좌우”

“우연히 신문에 실린 프랑스 요리학교에 대한 기사를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이게 내 일이다. 프랑스에 가야겠다. 한마디로 운명인거죠.”

박민재 ‘보트르 메종’ 셰프(52)에게 프랑스는 필연(必然)이다. 그는 1993년 전문대 졸업 후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이듬해 서울 강남구에 80석 규모의 부대찌개 식당을 차렸다. 매일 두툼한 햄과 소시지를 썰었다. 시큼한 김치와 진득한 고추장 냄새를 맡아가며 5년을 지새웠다. 수입은 짭짤했지만 창작의 고진감래는 느낄 수 없었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갈증을 느끼던 찰나, 프랑스 최고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의 기사를 접하게 됐다.

짜릿한 전기 충격이 메마른 심장을 강타한 것 같았다. 당시 32살이었던 박 셰프는 그 길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르 코르동 블루에 입학해 이름조차 생소한 푸아그라, 트러플, 캐비어 등의 재료를 다뤘다. 미슐랭 3스타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식당에서 실습을 하는 영광도 차지했다. 
 
박민재 ‘보트르 메종’ 셰프. 1994년부터 시작해 5년 동안 부대찌개 식당을 운영하다 ‘운명처럼’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20여년 동안 정통 프렌치 요리를 연구한 그는 “셰프의 마음가짐이 요리를 통해 손님에게 전달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실타래처럼 따라오던 행운은 그가 2001년 한국에 귀국한 후 엉켜버렸다. 2002년 경기도 양평에 식당을 냈다. 이듬해 서울 압구정동으로 자리를 옮겨 프렌치 레스토랑 ‘르 까레’를, 2009년에는 청담동에 ‘비앙 에트르’를 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박 셰프는 “당시에는 내가 왜 망가졌는지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레스토랑을 가졌던 것 같다”며 “일이 잘 안 풀리면 남 탓을 했는데 결국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인고의 세월 끝에 서울 신사동에 둥지를 틀었다.

지하에 위치한 ‘보트르 메종’은 아늑한 동굴같이 따뜻하다. 요리는 정갈하고 고급스럽다. 레몬그라스 향의 그릴에 구운 금태와 바닐라 향의 수플레는 둔해진 미각을 일깨우기 충분하다.

박 셰프에게 음식이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는 “음식으로 말을 하고, 표현해야한다”며 “셰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만드냐에 따라 손님들의 감흥이 달라진다”고 했다. 셰프가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면 그 마음이 전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담배나 술은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담배를 피운 손으로 요리를 하면 예민한 손님은 거북함을 느낀다”며 “미세혈관을 통해 니코틴이 전달될 수 있듯이 사소한 행동과 마음가짐에서 음식의 맛이 판가름 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흡연자를 주방 직원으로 고용하지 않는다.

박 셰프는 온종일 주방에 틀어박혀 있다. 향신료와 식재료의 절묘한 조합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맛 뿐만 아니라 미(美)도 연구 대상이다. 그의 음식은 선과 도형이 교차하는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하는 데, 이는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음식의 미(美)적 구성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꽉 찬 내공과 정성이 어우러진 한 끼의 식사는 손님의 지친 마음과 몸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가장 먼저 서빙되는 ‘아뮤즈 부쉬’는 옥수수ㆍ두부ㆍ샐러리악ㆍ아몬드 스프로 층층이 이뤄져 있다. 농밀한 스프를 한 스푼 떠 맛보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절로 행복한 탄식이 새어 나온다. 입안에서 눈송이처럼 바스러지는 에멘탈 치즈칩은 짭짤한 끝맛을 남긴다.

‘아뮤즈 부쉬’는 입맛을 돋우는 요리일 뿐이니, 전체 코스를 맛보고 싶다면 직접 보트르 메종을 찾길 권한다. 박 셰프가 말하듯, 행복은 음식을 타고 전해지니 그 행복을 맛보려면 굳이 망설일 필요가 있겠는가.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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