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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코릿-맛을 공유하다 ① 제주의 맛] 해녀(海女) 아니고 해남(海男) 입니다…57년 물질 인생
  •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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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海男) 1호 문정석 씨의 음식 인생
-‘먹고 살려고’ 16세에 물질 시작 57년 한길
-직접 잡아올린 해산물 따라 그날 메뉴 달라
-왕보말 갈아만든 죽, 성게 올리니 ‘眞味’

바다 사람은 거친 줄만 알았다. 해풍에 맞선 강인함, 생존을 위한 기민한 판단력, 망망대해를 두려워않는 모험가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바다의 포식자가 있다면 바다 사나이가 아닐까했다.

편견은 깨졌다. 해남(海男) 문정석(71) 씨를 만나고 부터다. 바다 위가 아닌 바닷속을 누볐기 때문일까. 그는 예상보다 훨씬 조곤조곤, 부드러웠다. 
대한민국 해남 1호 문정석 씨. 제주 ‘일통이반’을 운영한다. 직접 잡아온 해산물을 손수 손질, 요리해 손님에게 낸다.

▶제주 바다와 함께한 57년=“물질이요? 57년 했지요.”

그의 단순명료한 자기소개에 경외심 마저 들었다. 문 씨는 제주도 조례에 따라 정식 잠수로 인정받은 해남 1호다.

해남이나 해녀나 하는 일은 똑같다. 특별한 잠수장치나 채집도구 없이 수심 5~10m의 바닷속에서 소라, 전복 등을 채취하고 우뭇가사리, 미역 등 해초를 거둬 생계를 유지한다. 그가 물질을 하게 된 것도 생계 때문이었다.

“4남3녀 중 둘째인데 참 가난했지요. 아버지가 정미소를 하시다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오면서 완전히 폐허가 됐어요. 제주도는 쌀농사도 안되고 보리, 조, 콩 밖에 먹을 게 없었어요. 당장 먹고 살아야 했으니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일통이반 내부. 문 씨의 해남 인생사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1964년, 열여섯 소년은 그렇게 해남이 됐다. 척박한 제주땅과 달리 바다는 보물창고였다. 전복 10㎏를 건져 좁쌀 두 되를 바꿔먹었다. 미역과 전복, 해삼과 소라를 팔아 형제들을 키웠다.

‘갓잠수’(초보)로 벌이에 나섰던 문 씨는 시간이 갈수록 해녀들보다 월등해졌다. 바다에 들어갔다 하면 해녀들의 곱절로 낚았다. 문 씨는 “대한민국 최고 상군(가장 물질을 잘하는 해녀)이었다”며 “보통 해녀가 1시간에 70~80번 물속에 들어가는데, 40번만 들어가고 물량을 맞췄다”고 했다. 한창 잘나갈 때는 하루벌이만 70만~80만원에 달했다. 1981년에는 해녀와 결혼, ‘물질 부부’가 됐다.

그후 문 씨는 상군으로 흑산도, 일본해로 출장 물질을 다니기도 했다. 현재는 해산물 전문점 ‘일통이반’(제주시 삼도2동)을 운영한다. 모듬해산물, 돌멍게와 자연산 전복, 생선조림ㆍ구이, 재료부터 요리까지 문 씨의 손을 거친다. 
쌀과 소금 보말만 넣고 끓인 보말죽, 성게를 올려 먹으면 크림처럼 부드럽다.

▶성게를 올린 왕보말죽…크림처럼 부드럽다=보말죽과 성게가 나왔다. 테이블을 세팅한 아주머니가 보말죽을 한술 떠 성게를 올린다. 그 위에 톳 무침을 더한다. 숟가락은 기자의 입을 향해 돌진한다. 이 무심하고도 섬세한 강제시식이 어리둥절하고 유쾌하다. 김에 성게를 싸먹거나 보말죽 한수저에 미역과 장아찌를 올리기도 한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 크림처럼 부드러워 술술 넘어간다. 일통이반 보말죽은 어른 손만한 보말을 내장까지 갈아 깊고 진하다. 맛을 내려고 참기름 깨소금을 쓰지않고 오로지 보말과 소금, 쌀로만 끓여낸다. 왕보말은 16~17m 깊이에서 채취할 수 있다. 해녀들은 좀처럼 따기 힘든 해남만의 특별재료다.

“요즘도 바다에 들어가지요. 60대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70대가 되니 힘에 부쳐요. 그래도 우리 가족 먹고 살게 해준 바다가 참 고마워요. 바다에 들어갔을 때 맘도 제일 편하지요. 앞으로도 기력이 있는 한 물질을 할겁니다.”

서울에서 온 생면부지 기자와의 ‘대뜸 인터뷰’를 마친 해남은 주방으로 돌아가 부지런히 부엌칼을 쥐었다.

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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