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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의 수도, 페루의 맛⑤]“감자 유전자 보관은 100년 후 미래세대를 위한 일”-국제감자센터 아나판타 연구원
  • 2017.10.12.
[미식의 수도, 페루의 맛⑤]“감자 유전자 보관은 100년 후 미래세대를 위한 일”-국제감자센터 아나판타 연구원
[리얼푸드=리마(페루) 고승희 기자] 전 세계 ‘감자의 고향’인 페루엔 수천개의 감자 종을 보존하는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 감자를 이야기할 땐 페루를, 그리고 바로 이 곳 ‘국제감자센터’를 빼놓을 순 없다. 
페루 리마에 위치한 국제감자센터

페루 리마에 위치한 국제감자센터(International Potato Center-CIP)는 1971년 설립, 올해로 47주년을 맞았다. 페루 리마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지점을 두고 ‘감자 종주국’으로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국제감자센터 유전자뱅크(Genebank)에는 페루 안데스 산맥에서 서식하는 4500개의 감자 종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기증받은 감자들이 보관 중이다. 이 곳에서 25년간 ‘감자 지킴이’로 연구 중인 아나 판타 연구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국제감자센터 유전자뱅크에서 근무 중인 25년 경력의 아나 판타 연구원

▶1만년간 지킨 감자 유전자…“아연과 철분이 필수”=페루는 ‘감자의 천국’이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발견되는 감자만 해도 무려 4500종에 달한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날씨의 85%가 있는”(아나 판타 연구원) 다양한 기후와 지역으로 인해 감자 재배 환경도 발달했다.

“1만 년 전부터 전통적인 농사 방식으로 감자를 재배했어요. 그 때부터 날씨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감자들이 적응하고 진화해 4500개 종류의 감자가 생겨나게 됐어요.”

국제감자센터에선 “쌀과 밀을 빼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식량”인 감자를 지키기 위한 일을 주업무로 삼고 있다. 기후변화에도 감자가 사라지지 않고 잘 성장하도록 연구에 힘 쓰고, 미래 세대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감자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자가 사라지면 감자 종이 사라지게 돼요. 유전자는 감자가 1만 년 동안 누적해 쌓아온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 년동안 길러진 특징을 지켜야 감자 종이 생존할 수 있죠.”
국제감자센터에 전시 중인 다양한 종류의 페루산 감자들

현재 감자의 재배와 보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후변화다. 감자 산지인 안데스 산맥에선 온난화로 인해 감자 재배 지역이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해발 2500~3000미터부터 재배되던 감자들은 이제 해발 3500m에서 재배가 가능하게 됐다. 아나 판타 연구원은 “예전에는 3500m ~ 3700m에서 재배가 가능했던 감자 종은 4500m 이상 높이로 올라가야 재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안데스 농부들과의 협업으로 센터에선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감자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어요. 그 결과 기후변화에도 잘 살아남기 위해선 감자에 ‘아연’과 ‘철분’ 성분이 중요하다는 점을 파악했죠. 아연과 철분이 감자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쳐요. 감자를 먹는 사람뿐 아니라 작물 자체를 건강하게 만들어내는 영양소가 바로 아연과 철분이었어요.” 국제감자센터에선 이를 통해 영양성분을 강화한 감자 종을 개발하고 있다. 
국제감자센터 유전자뱅크 연구원

▶ “유전자 보관은 100년 후 미래 세대를 위한 일”=국제감자센터에서 감자 유전자를 보관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영상 7℃의 유리병에 보관해 서서히 자라게 하는 방식과 영하 196℃의 동결 보존 방식(cryobankingㆍ크리오뱅킹)이다. “동결보존 방식은 국제감자센터의 가장 최신 기술이에요. 영하 196℃에서 1800개 종을 보관하고 있죠. 인간이나 동물의 세포를 보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에요.”

국제감자센터에선 동결보존이 감자 유전자 보관에 가장 중요한 방식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센터에서의 연구 결과 이 같은 방식으로 100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얻었어요. 우리의 목적은 최소 100년간 감자 유전자를 보관해 미래 세대가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예요.”

국제감자센터에선 센터와 연계된 노르웨이 스발바드(svalbard vault) 뱅킹에는 감자의 ‘증조 할아버지’로 불리는 아까울레(s. acaule bitter) 종을 보관하고 있다. 현재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자생하고 있으나, 식량으로 소비되는 감자는 아니다. 아나 판타 연구원은 “아까울레 종은 미래 세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감자”라고 강조했다.

“1만 년간 기후 변화를 견뎌온 감자예요. 향후 미래 세대는 이 감자 안의 성분들을 추출해 만든 새로운 감자를 먹게 될 거예요. 미래를 위한 식량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종이죠. ”
수천 종의 감자를 보관 중인 국제감자센터 유전자뱅크

국제감자센터에선 보관 중인 유전자를 통해 복제본 감자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감자를 개발해낸다. 지난 5년간 국제감자센터를 통해 복제본 400개가 다시 태어났고, 120개의 새로운 감자가 지구상에 등장했다.

유전자 보관이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라면, 질병 치료는 현세대를 위한 일이다. 보다 건강하고 영양성분이 강화된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바이러스 치료도 국제감자센터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예요. 질병에 걸린 감자를 치료해 다시 농부에게 전달하면 건강한 종자로 농사를 짓는 거죠. 감자에선 총 35개의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는데, 그 중 96%를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있어요.”
수천 종의 감자를 보관 중인 국제감자센터 유전자뱅크

연구 대상에 감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구마을 비롯해 각종 뿌리채소가 국제감자센터에서 함께 보존된다.

“고구마도 인류에게 중요한 작물이에요. 비타민A의 전구 물질이 풍부해서 빛깔은 오렌지 색을 띄어요. 페루에선 ‘주황색 고구마’(camote amarillo 까마떼 아마리요)라고 불러요. 고구마는 아프리카 지역에 많이 보내요. 이 지역 아이들은 비타민A 부족으로 눈이 멀어가는 증상을 보이고 있거든요.” 국제감자센터가 아프리카 지역으로 보내는 영양가 풍부한 고구마는 2016년 음식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월드 푸드 프라이즈’(World Food Prize)에서 세계영양상을 받았다.
감자의 증조할아버지로 불리는 아까울레 종은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감자”라고 아나 판타 연구원은 설명했다. 

“페루인에게 감자는 ‘신이 주신 영광’이에요. 이렇게 많은 감자 종류를 보존하고,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안데스 산맥의 농부들이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센터에선 농부들과 협업해 영양성분이 더 풍부한 작물을 생산하고, 종자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하는 거예요. 100년 후 미래 세대를 위한 식량 자원을 남기는 일이죠.”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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