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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도 감자도 왜 한 종류만 먹을까?…“까다로운 소비가 생산을 바꾼다”
  • 2017.10.31.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미국 농학자 캐리 파울러(Cary Fowler)에 따르면 18세기 미국엔 7100종의 서로 다른 품종의 사과가 재배됐다. 현재까지 6800종이 멸종했다. 페루 국제감자센터의 아나 판타(Ana L. Panta Lalopu) 연구원은 리얼푸드와의 인터뷰에서 “안데스에선 1만 년 전부터 감자가 재배됐고, 현재 페루엔 4500종의 감자가 재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무수히 많았고 지금도 많은 품종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사과와 감자는 몇 종류나 될까.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최근 진행된 코엑스 푸드위크 ‘맛있는 세미나’에 참석,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과일은 사과인데 한 시즌에 사먹는 것은 한 품종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름엔 아오리, 가을엔 홍로가 대세를 이룬다. 반면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선 “북부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를 생산하는 데도 무려 12가지의 사과를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다”(문정훈 교수)고 한다. 

감자도 마찬가지다. ‘감자의 원산지’인 페루에선 지금도 안데스 주민들이 지대와 날씨의 변화에 맞춰 각기 다른 감자를 생산한다. 페루 사람들은 이 다양한 품종의 감자를 서로 다른 요리로 소비한다. 전분 함량이 저마다 달라 튀김용 조림용은 물론 삶는 감자, 끓이는 감자가 각각 다르다.

한국 마트에선 농작물의 다양성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보다 어렵다. 어지간히 깐깐한 소비자가 아니라면, 대다수의 소비자는 마트에서 적당히 빨갛게 익은 부사와 하얗고 동그란 수미감자를 구입하게 된다. 문 교수는 “OCED 국가 중 품종 구분 없이 식재료를 구입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국내 농수축산물 생산 환경 탓이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는 최근 20~30년 사이 소품목 대규모 생산에 초점을 맞춰 방향성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농축산물에서 다양성은 사라지게 됐다. “높은 생산성을 지녀 ‘많이 팔릴 수’ 있는 작물”만 살아남고, “보존성이 떨어지거나 수확량이 적은 작물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문정훈 교수) 도태됐다. 


▶ 지속가능한 생산, “다양성이 기본 토대”=‘생물 다양성’은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한 밑거름이다. 전문가들은 생물 다양성을 “농업 생산의 근본적 토대”이자, “농작물이 진화할 수 있는 원재료”(미국 식물학자 잭 할란ㆍJack Harlan)라고 설명한다. 특히 농작물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종을 지킬 수 있다”(문정훈 교수)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많은 먹거리는 갑작스런 위기에서 견뎌낼 힘을 잃는다. 급격한 기후변화, 기후변화로 인한 병충해 발생, 재배경작지 축소는 무한할 것이라 믿었던 식량 자원의 숫자를 빠르게 줄이는 요인이다. 1800년대 중반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은 ‘다양성의 상실’이 가져온 식량자원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 ‘최악의 재난’이었다. 1845년 발생한 유럽의 ‘감자 대기근’은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아일랜드의 상황은 심각했다. 단일품종의 감자만 재배하던 아일랜드에 병충해가 돌자, 감자는 맥을 못 추고 죽어나갔다. 감자 작황은 10%대로,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들었다. 당시 사라진 인구 규모는 지금도 회복하지 못 하고 있다.

페루 국제감자센터는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각종 위기에서도 감자가 사라지지 않고 잘 성장하도록 감자 유전자 보존”을 주요한 업무로 삼고 있다.

아나 판타 국제감자센터 연구원은 “유전자가 사라지면 감자 종이 사라진다”며 “센터에선 잉카 시대부터 1만 년간 살아남은 감자 종의 유전적 특징들을 잘 보존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1만년간 살아남은 감자라는 것은 지난 시간 동안 나타난 각종 이상 기후와 재해에도 견뎌온 강인한 품종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식량자원”이라는 의미다.

문정훈 교수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종 가운데 다양한 기후변화에 대응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작물이 있을 수 있다”며 “다양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머지 않은 미래의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엑스 푸드위크 세미나에 참석한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 지속가능한 소비, “이제는 소비 행동이 생산을 바꾼다”=종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생산자와 연구자의 몫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소비 행동이 생산을 바꾸는 시대”(문정훈 교수)로 돌입했다. “지속가능한 소비 행동”이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첫 걸음이다.

문정훈 교수는 지속가능한 소비 행동을 세 가지로 파악했다.

먼저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소비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유기농의 정의는 “생물 다양성, 생물 순환 및 토양 생물활동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생태학적 생산 관리 시스템”을 말한다. 문 교수는 “유기농은 작물에 대한 인증이 아닌 농사 짓는 방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유기농산물을 영양상, 건강상의 이유로 구입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유기농과 일반 작물과의 비교연구에서 유기농이 영양학적이나 안전성이 낫다는 연구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다. 문 교수는 후자쪽에 조금더 방점을 두고 유기농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유기농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물 다양성을 위한 선택이자, 다음 세대가 먹고 살 수 있는 땅을 물려주기 위한 이번 세대의 약속” 차원에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소비 행동의 두 번째는 ‘까다로운 선택’이다. 현재 국내 농축산 환경은 높은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문 교수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비용이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며 “지금은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면 그만인 시대다”라고 꼬집었다.

문 교수는 그러면서 “소비자의 까다로운 선택은 생산을 바꾼다”며 “가격이 가장 중요한 시장에서 생산자는 가격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생산 단가를 낮추는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커피와 라면을 브랜드별, 프랜차이드별, 종류별로 구분해 구입하듯 소비자에게 “까다로운 소비 행동이 뒷받침돼야”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지역 특산 음식을 찾아 맛을 보는 것 역시 ‘지속가능한 소비’ 행동의 하나다.

로컬푸드는 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사회운동이다. ‘로컬푸드’의 구분은 거리 단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며, 현재 국내에선 지자체 단위로 로컬푸드가 구분되고 있다. 이 같은 개념적 구분과는 별개로 문 교수는 “미래의 로컬푸드는 생명 다양성을 기반으로, 획일화에 대한 저항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로컬푸드’가 식품 안전성에서 월등하다거나, 더 건강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다. 그럼에도 로컬푸드의 소비가 중요한 이유는 ‘다양성 확보’에 있다. 문 교수는 “햄버거와 같은 글로벌화되고, 표준화된 음식만 소비하면 자생하던 다양한 식재료가 사라지게 된다”며 “로컬푸드를 소비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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