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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⑥케냐(물고기)-바닥 드러낸 빅토리아호수…케냐 어촌의 위기
  • 2017.11.03.
-기후변화 여파 아프리카 빅토리아湖 어업도 타격
-기온 상승ㆍ오염…케냐 키수무 어획량 5년전 대비 66%
-빅토리아 호수에 면한 탄자니아, 우간다 상황도 비슷

[리얼푸드=키수무(케냐) 박준규 기자] 아침 8시의 빅토리아 호수는 고요했다. 어부 조지(Geoge)는 묵묵하게 호수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고깃배는 선수에서 선미까지가 4m쯤 되는 소형 목선이었다. 배 몸통에 칠한 초록색 페인트는 거의 벗겨져 있었다. 모터 같은 동력장치는 달려있지 않았다. 물가에 늘어진 다른 배들도 생김새는 대개 비슷했다.

이제 스무살이 갓 넘었다는 조지는 색바랜 청바지에 진녹색 외투를 걸쳤고 신발은 신지 않았다. 호수로 나가면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었더니 “오후 1시에 다시 돌아온다”고 대답했다. 주로 잡는 물고기는 나일퍼치와 틸라피아. 약 200가지 어종이 모여 사는 빅토리아호에서 어부들이 건져 올리는 대표적인 물고기다. 조지는 “호수가 전보다 많이 말라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질 않는다”고 푸념했다. 

케냐 키수무에 ‘둥가’ 어촌의 어부들이 오전 조업을 준비하고 있다. 배들은 대개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목선이다. [사진=박준규 기자]

지난 7월 초, 케냐 나이로비에서 비행기를 타고 50분을 날아 서부 거점도시 키수무(Kisumu)를 방문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빅토리아 호수(6만9485㎢)에 접한 도시다.

빅토리아호는 총연장이 6700여㎞에 달하는 나일강의 수원(水原)이다. 덕분에 ‘아프리카의 젖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웃한 세 나라(케냐ㆍ우간다ㆍ탄자니아)가 호수를 공유하고 있다. 케냐 키수무를 비롯해 호수 둘레에 사는 수백만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어업 경제’를 영위했다.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는 이들의 주요 식량원이자, 돈벌이 수단이었다.

▶색바랜 ‘생태관광 마을’ = 하지만 현재의 빅토리아 호수 주변에선 활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키수무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0분을 더 달려 둥가(Dungga)라는 어촌으로 향했다. 시내 중심가에는 화웨이(Huawei), 인피닉스(Infinix), 오포(Oppo) 같은 중국 휴대폰 브랜드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키수무 도심을 빠져나온 뒤로는 계속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했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안내판엔 ‘둥가, 생태관광 마을(Dungga, Eco-culture Village)’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마을 어디에도 관광객이 갈만한 식당이나 즐길 시설은 보이질 않았다.

오전 9시쯤 조용했던 호숫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고무대야나 플라스틱 소쿠리를 손에 든 마을 아낙네들이 물가로 우루루 몰려 나왔다. 먼 호수에서 어업을 마친 고깃배 서너척이 느리게 뭍으로 다가왔다. 새벽에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이다. 오매불망 배를 기다리던 마을 여성들이 배로 다가갔다. 한 주민이 “여자들은 어부들에게 물고기를 사서 시내에 있는 시장에서 판다”고 설명했다.

조업을 마치고 뭍으로 배가 들어오자, 마을 여자들이 배로 다가가 물고기를 구입한다.

선주 마이클 오코토(Michel Okoto) 씨의 배에 올라탔다. 배 바닥에는 ‘오메나(Omena)’라는 고기가 가득했다. 생김새는 멸치와 비슷했지만, 몸집은 조금 더 커 보였다. 배를 둘러싼 주민들이 어부와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마이클 씨는 “오메나를 대야 하나에 가득 담으면 보통 50실링(약 540원) 정도에 거래된다. 오늘 잡은 물고기 양은 잘될 때의 60~70% 수준밖에 안 된다”며 “요즘은 건기인데다가 물 상태가 나빠져 땅에서 가까운 호수에선 물고기가 잡히질 않고 먼 곳까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배에서 물고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어부들이 잡은 건 ‘오메나’라는 물고기다.

키수무 카운티 정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키수무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는 2009년 4013t이었으나 지난해엔 2651t으로 33%나 줄었다.

▶마르는 호수, 늘어나는 어부 = 이곳 어부들은 “호수의 환경이 과거보다 나빠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일단 매년 물이 줄어드는 걸 체감한다. 콜라스(Nicolas) 씨는 “20년 전에는 호수물이 마을 어판장 바로 앞에서 찰랑거렸지만 이제는 호수와 땅의 경계가 5m 이상 밀려나 바닥이 드러났다”며 “지금이 아무리 건기라고해도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강조했다. 

어촌 주민들은 과거엔 호수물이 이 땅까지 들어왔다고 증언한다.

빅토리아호어업협회(LVFO)가 펴낸 보고서는 빅토리아 호수의 어업 환경이 꾸준히 나빠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빅토리아 호수가 점점 탁해지면서 수초와 물고기가 생존하려면 필수적인 태양빛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 배경으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 ▷오염물질 유입 ▷치어까지 잡아들이는 무분별한 어획 등이 거론된다.

호수에서 물고기 잡기는 매년 어려워지고 있는데, 어촌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올해 7월 기준으로 둥가에서 활동하는 어부는 300여명. 10년 전(150여명)보다 2배 정도 늘어났다. 
케냐 서부에 자리잡은 키수무는 빅토리아 호수에 면해 있다. [그래픽=최현주]

요남 에시앙(Jonam Etyang) 키수무 카운티 어업국장은 “경제상황이 나빠 일자리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시내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어업으로 몰린다”고 설명했다. 10년 전 2500명 수준이던 키수무 카운티의 어업 종사자는 현재 3200명으로 늘어났다.

니콜라스 씨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장에서 물고기 가격이 올랐다”면서 “그래도 잡는 양 자체가 줄다보니 어부들이 버는 돈은 하루에 고작 1500~2000실링(약 1만6000~2만1000원) 정도다. 물고기가 잘 잡히던 때에 3000~4000실링을 벌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났다”고 이야기했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식용 물고기 ‘틸라피아’.

우간다와 탄자니아도 기후변화가 일으킨 파문으로 어업이 타격을 받았다. 특히 빅토리아 호수 면적의 51%를 차지한 탄자니아는 물고기 개체수 감소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LVFO에 따르면 탄자니아에서 잡힌 나일퍼치는 2014년 9월 65만t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8월엔 41만t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케냐에서도 나일퍼치 어획량이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nyang@heraldcorp.com

※이번 기획보도는 지난 2월, 삼성언론재단이 공모한 기획취재 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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