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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의 수도, 페루의 맛⑨]‘인턴에서 수셰프까지…’리마 센트럴 최초의 한국인 셰프 정상,
  • 2017.11.21.
[리얼푸드=리마(페루) 고승희 기자] 전 세계 미식가가 몰려드는 페루 리마의 센트럴(CENTRAL) 레스토랑. 통유리 너머 주방의 제일 앞자리에 선 동양인 셰프는 유독 눈에 띈다. 주방 안 유일한 한국인. 차분하고 정교한 셰프의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시선도 향한다. 손님들은 종종 그의 국적을 궁금해한다. 몇 번쯤 같은 답변이 들려온다. “히 이즈 코리언(He is Korean)”

정상(30) 셰프에게 2년 전 1월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호주 시드니의 파인다이닝 키(Quay)에서 일하던 때였다. 그는 페루와 덴마크로 이메일을 보냈다. 세계적으로 인기높은 레스토랑 중 하나인 센트럴(CENTRAL)과 덴마크 노마(NOMA)로의 인턴 지원 메일이었다. 노마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4번이나 선정, 해마다 100만명이 예약하는 곳이다.

“그 때 센트럴은 세계 15위였어요. 플레이트가 굉장히 독특한 곳이었죠. 당시 한창 문어 요리에 빠져있었는데 센트럴의 시그니처 디쉬 중 하나가 문어 요리였어요.” 정상 셰프는 센트럴의 ‘특이한 매력’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당시 센트럴은 남미 1위 레스토랑이었다. “두 달을 기다렸는데 답장이 안오더라고요. 스토리를 바꿔 다시 이메일을 보냈죠.”

3주 뒤 답장을 받았다. 2015년 3월이었다. 때마침 뜬 ‘프로모션 항공권’을 구매해 리마로 날아왔다. 생전 처음 와본 도시. 그 곳은 ‘미식 천국’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며 호스텔에 묵었다. 그 때 ‘세계 1위 레스토랑’인 노마에서 답장이 왔다. 인턴 지원 합격 메일. “그런데 저도 알고 있었어요. 노마에 가면 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요.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의 수셰프들이 인턴을 하겠다고 오는 곳이 노마니까요. 덴마크로 가면 정식 비자를 가지고 일할 수 없을 지도 몰랐죠. 그러면 3개월 후 한국으로 올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페루에 가면 4년은 돌아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게 센트럴로 향했다. 2015년 5월이었다.

정상 셰프는 인턴 2주 만에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채용 3일 뒤 센트럴은 ‘2015 월드베스트레스토랑50’에서 4위에 올랐다. “그 때 셰프한테 가서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어요. (웃음) 센트럴에 온 건 지금까지 했던 여러 결정 중 손 꼽을 수 있는 잘 한 결정이었어요.” 지난 7월, 페루 리마 센트럴 레스토랑 ‘최초’의 한국인 셰프 정상을 만났다. 

정상(30) 셰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으로 떠오른 센트럴의 최초의 한국인 수셰프다.

▶ “인턴에서 수셰프까지”…주방은 정글=센트럴 입성 2년 2개월.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Virgilio Martínez) 셰프는 처음으로 함께 일해 본 한국인을 수셰프(Sous-Chef) 자리에 앉혔다. 수 셰프는 부주방장으로 주방에선 헤드셰프 아래 2인자다. ‘초고속 승진’이다. 그간 별별 소문이 돌았다. “상, 너 여기서 잔다며?” 일벌레였던 정상 셰프에게 따라다닌 소문의 실체다.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주방은 ‘정글’이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서로의 포지션을 빼앗아야 하는 곳이다. “주방에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해요. 내가 빼앗지 않으면 내 자리를 먼저 뺏기는 곳이죠. 저도 예전엔 몰랐어요.”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정상 셰프에게 타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정서’로 ‘정글의 법칙’에 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셰프들이 뭔가를 이야기하면 무조건 내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외국에선 내 잘못이 아닌데 미안하다고 하면 무슨 잘못이 생길 때마다 계속 그 사람을 지적해요. 그 땐 반드시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의사 표시를 해야해요. 그게 한국인의 정서로는 너무나 어려웠어요.” 



정상 셰프는 대학 졸업 이후 ‘정식당 안주’와 다른 한식당에서 일을 한 뒤 미국 미네소타 소피텔 호텔에서 경력을 쌓았다. “학교도, 일을 시작한 곳도 한국이었잖아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땐 ‘노’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하죠. (웃음) 하지만 어디든 태도를 일순위로 생각해요. 내가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되 일은 칼 같이 해야하죠.”

센트럴에서도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페루엔 덜 하다지만, 어디나 ‘텃세’는 존재한다.

“8개월쯤 됐을 때, 파트장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를 시기했던 친구가 실수를 하게끔 만들더라고요.” 셰프와 함께 하는 중요한 서비스에서의 ‘계획된 실수’로 이미 약속 받았던 ‘파트장’(셰프 드 파티에, 수셰프 전 단계)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 때 3~4개월쯤 패닉이 왔어요. 작은 부분이었지만, 그 땐 이것만 봤거든요.”

이후 센트럴의 모든 파트(콜드, 핫, 가니쉬, 그릴, 소스, 스낵)을 거쳤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수셰프가 됐다.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정상 셰프는 그러나 “실력만 보고 수셰프가 된 건 아니”라며 자신을 낮췄다. “성실함이나 우직함을 많이 봐줬던 것 같아요. 남미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캐릭터가 있어요. 그래서 리스크가 없는 캐릭터를 원해요. 일관성 있는 사람이요.”

지난 2년, 정상 셰프의 세계엔 센트럴과 집 밖에 없었다. 이 곳은 페루였지만, 그에겐 곧 ‘센트럴’이기도 했다. 수험생처럼 ‘직장’과 ‘집’만 오갔다. “가끔 바다를 바라보면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센트럴은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센트럴을 선택할 때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조언도 들었다. “안 오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전 세계에서 미식으로 떠오르는 곳인데,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은 “센트럴에서 일하고 배우는게 너무나 좋다”고 한다. “어릴 때 항상 과자랑 밥을 같이 먹었어요. 부모님한테 엄청 혼났어요. 근데 페루에 와보니 소스를 만들 때 크래커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더라고요. 그 때 생각했어요.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미식의 중심지에 오려고 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죠. (하하)”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가운데) 센트럴 레스토랑 오너 셰프 네 명의 수셰프. 오른쪽 두 번째가 정상 셰프다.


▶ “한국의 식재료만을 사용한 요리”= 정상 셰프가 있는 센트럴 레스토랑은 페루의 다양한 생태계를 접시에 담아내는 독특한 레스토랑이다. 고도(高度) 개념을 활용한 천재적인 코스 메뉴엔 페루 사람들도 알지 못 하는 식재료가 오른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스토리텔링과 경험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다.

“센트럴에 온 건 독특한 식재료를 찾는 시스템이나 요리 과정, 셰프가 생각하는 방식과 철학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센트럴의 코스는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예요.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전통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어요. 하지만 절대로 연관이 없는 스토리를 담지 않아요. 영리한 스토리텔러죠. 요즘엔 셰프도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흥미롭게 연출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재료의 천국이며, 미식 도시인 페루에서의 경험은 ‘요리하는 사람’에겐 축복이다. 이 곳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은 정상 셰프의 최종 목적지는 ‘한국’으로 향해있다. 경력을 쌓은 뒤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항상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었죠. 그런데 한국에 있다보면 내게 올 기회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럴 거면 차라리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해보자 싶었던 거예요. 보다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2012년 미네소타 소피텔 호텔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그는 줄곧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다. 미국 시카고 앨리니아(Alineaㆍ2013), 호주 샹그릴라 호텔(Shangri-Laㆍ2014), 키 레스토랑(2014)을 거쳐 센트럴로 왔다. 어느덧 6년이다. 고등학교 1학년, EBS에 나온 영국 셰프 제이미 올리버를 보며 요리사의 꿈을 키운 이후 13년이 지났다.

당분간은 기약이 없다. 비르힐리오 셰프와의 프로젝트도 많다. 이름 뒤에 따라오는 이력만으로도 차세대 스타 셰프 자리를 예약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은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도 실력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느 나라 셰프들 못지 않게 요리를 사랑하고 지식이 방대해요. 지금 한국에 돌아간다면 센트럴이 정점에 있으니 주목을 받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바로 내려와야 할 거에요. 더 실력을 쌓아야죠. 조금 더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페루를 담아낸 센트럴에서의 경험은 그의 목표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을 하고 싶어요. 전통 한식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한국에서 나는 식재료만을 이용해 한국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찾아 그것을 확립시킬 수 있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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