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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지구인들의 ‘행복자격증’, 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
  •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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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7년 무사고에 해당하셔서 1종 면허로도 신청이 가능하신데, 해 드릴까요?” “아뇨, 뭐 굳이.”

필자는 장롱면허 소지자다. 더구나 10년 전 승용차도 팔았다. 안전 무사고도 아닌 주제에 우수 운전자처럼 1종 면허를 발급받을 수 없어 정중히 거절했다. 갱신 연락을 받고서야 ‘참, 내게도 운전면허증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자격증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가장 확실한 미래 보장형 자산처럼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필자의 ‘장롱면허증’만큼이나, 우리가 갖고 있어도 무심히 버려두고 있는 지구인만의 특별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자격증이란 일정한 신분, 지위를 갖거나 일정한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조건과 능력을 충분히 갖췄음을 인정해 주는 증서를 말한다. “당신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세상 모든 동물 중 영묘한 힘을 지닌 우두머리 영장동물로서 세상을 살아감에 행복을 선택하고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필자는 이를 ‘행복자격증’이라 말한다. 폼 나는 자격증 아닌가.

시가를 운운하며 놀라는 10억짜리 판다도, 재벌집 거실에서 유기농 사료를 먹고 사는 반려견도, ‘동물의 왕’ 사자도 결코 이 ‘행복자격증’을 소유할 수 없다. 우리 인간만이 출생과 동시에 자동 취득이 가능하다. 재주 많은 천재나 세계적인 억만장자도 삶을 마감하면 자격이 자동 소멸된다.

더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해 볼까. 지구상에 생존하는 우리 인간은 매년 1월 1일이 되면 8760시간을 선물받는다. 더불어 아무 이유없이 그저 우리를 사랑해 주는 혈연 가족이 자동으로 생기고, 좋아하는 사람을 골라 친구로 삼거나 맘에 드는 이성을 찾아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펼쳐진 식재료와 물적 자원을 모두 마음대로 조합해 지구라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행복을 요리할 수 있는 특권층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작은 에피소드를 말해 보련다. 지난해 필자는 대한민국 엄마로서 학령기 엄마의 최종 성적을 시험받았다. 일명 ‘고3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길을 향해 스스로 단단해지길 믿으며 큰 간섭 없이 일에 열중했다. 그러나 ‘불합격’이라는 달갑지 않은 소식을 경험했다. 씁쓸한 웃음으로 “재수합니다”라고 말하며 묻는 이의 어색함을 스스로 더 달랬다.

친구의 합격 소식에 축하 문자,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속 합격증 사진에 ‘좋아요’를 공유하며 “엄마. 난 괜찮아”라며 상한 속을 감추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오십이 다 찬 나이까지 수없는 경쟁 속에서 탈락을 맛봤던 그간의 열등감보다 더 상처가 깊었다.

2018년 첫날 0시. 아들은 이제 와인 한 잔 떳떳이 마실 수 있는 자격이 됐다. “이 쓴 것을 왜 먹느냐”며 웃음 짓던 아들은 “엄마. 나만 붙었어도 오늘이 행복했을텐데. 미안해.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누운 채 겨우 젖병을 잡던 아들이 이젠 자라 와인잔이 아닌 와인병을 깨지 않고도 잡고 마실 수 있는 감격을 느끼기도 전 필자는 와락 눈물을 터뜨렸다. “아들, 친구 중 서울대 의대 합격한 친구 있지? 엄만 그 친구 100명을 데려와도 너랑 못 바꿔. 하늘에서 줄서서 기다리다 딱 내 자식으로 잘 왔다. 고마워.” 힘든 속내를 감췄던 우리 가족은 마치 잊고 살았던 삶의 해법을 찾은 듯, 어둡고 춥고 무거운 겨울 길을 밝고 따스하고 경쾌한 마음으로 걸었다.

“이 사건만 없었다면, 이 실패만 없었다면 행복했을텐데”라며 거머쥐려 했던 모든 것은 어쩌면 모두 행복의 본질이 아닐지 모른다. 행복을 저축하지 말자. 살아 있는 동안만 가질 수 있는 이 행복을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성공 방정식에 대입하지 말자.

2018년 필자는 가장 중요한 자격증 갱신을 위해 노력 중이다. 비교하지 않기, 도전하되 나만을 위한 탐욕을 담지 않기로. 없어지면 엄청 후회할 지금의 행복 재료를 잘 정리해 “저 행복자격증 갱신해 주세요”라고 ‘하늘나라 지구행정과’에 떳떳하게 요청할 수 있는 멋진 영장동물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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