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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바람 이겨낸 채소는 손님에게, 음식물 찌꺼기는 거름으로…”
  • 2018.02.13.
- 제주 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 프렌치 레스토랑 밀리우 김영원 셰프

[리얼푸드=(제주) 고승희 기자] 눈썰미 좋은 식도락가라면 제주의 바닷가와 길거리는 ‘식재료 천국’으로 보일지 모른다. 바닷가 돌 틈에선 방풍나물이 자라고, 길가에선 로즈마리도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

“4계절 온도차가 심하지 않아 돌아다니다 보면 들판에서도 뜯어 쓸 수 있는 허브 종류가 많아요. 로즈마리나 타임도 길 가다 쉽게 만날 수 있고요.”
김영원 밀리우 헤드셰프는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며 “손님들의 테이블에 신선한 식재료를 제공하고, 음식물 찌꺼기로 비료를 만들어 거름으로 되돌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리얼푸드]

금세 거칠어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김영원(37) 밀리우 헤드셰프와 함께 호텔 앞 텃밭으로 향했다. 나무 울타리를 촘촘히 세워둔 이 곳에서도 로즈마리와 루꼴라가 자라고, 자그마한 올리브 나무가 손짓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김영원 셰프가 프렌치 레스토랑 밀리우의 헤드 셰프로 선임된 후 생긴 텃밭이다. 김 셰프와 함께 제주 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에선 처음으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실현하게 됐다. 
제주 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의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각종 허브와 채소들 [사진=제주 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 제공]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라지만 표선 해수욕장을 마주보며 자리한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 여름 바닷바람을 이겨낸 로즈마리, 월계수, 타임 등의 허브류와 토마토, 가지 등의 채소 20가지가 놀랍도록 자랐다. 겨울엔 래디쉬, 비트와 같은 뿌리채소가 자리를 메우고 있다.

김 셰프가 밀리우에 온 뒤 텃밭을 만들자,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호텔을 관리하시는 분들께선 절대 텃밭 작물이 자라지 않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작물들이 바람이 불면 다 옆으로 넘어간다고요.” 초겨울엔 15℃를 웃돌 만큼 기온이 오르기도 하지만, 바닷바람은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다.

밀리우에 오기 전 프렌치 비스트로 뀌숑 82를 운영할 당시에도 가꿨던 텃밭 노하우가 제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서울에서도 텃밭을 가꿔봤기 때문에 방식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은 바닷가 바로 옆이라 바람이 더 심하더라고요.” 게다가 제주의 토질은 육지와 달랐다. “여기는 화산토잖아요. 높은 온도에 튀겨진 흙이라 수분이 쉽게 말라요. 그래서 물을 더 많이 줘야해요.”

아무 것도 없는 땅에 텃밭을 가꾸는 일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육지에선 쉽게 자랐는데 제주의 바닷바람을 견디지 못한 종류도 있었다. 김 셰프는 “바닷바람을 맞으면 얇은 잎채소는 겉이 노랗게 타버린다”고 했다. “염분기가 내려앉아 노랗게 되는 걸 탄다고 표현해요. 이태리 파슬리는 육지에선 잘 자라지만, 이곳에선 성장이 엄청 느리더라고요. 루꼴라도 자라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요. 허브 종류인 딜은 아예 자라지 않았어요.” 반면 염분에 강한 시금치나 토마토는 오히려 단맛이 강해져 잘 자라는 채소였다.

“처음엔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패하고 갈아엎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는 사이 노하우가 쌓였다. 어느 정도 키워둔 상태에서 심으니 모진 바람도 이겨내고 잘 자라는 작물들이 많아졌다. “기온이 따뜻하다 보니 육지에선 2모작으로 끝나지만 여기에선 3모작, 4모작도 가능하더라고요. 제주 날씨가 동남아와 비슷해지고 있잖아요. 특히 샐러드 종류가 잘 자라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서 뷔페에 다 가져다주기도 했어요.”
텃밭에서 농작물을 돌보고 있는 김영원 셰프 [사진=제주 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 제공]

김 셰프가 밀리우에 오며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식재료에 대한 욕심은 물론 ‘팜 투 테이블’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모든 요리사들이 대부분 식재료 욕심이 많아요. 식재료를 구할 때 업체를 통해서 받은 채소는 3일 정도 밖에 가지 않지만, 제가 직접 하우스에 가서 받으면 5일을 쓸 수 있고, 직접 기르면 7일을 쓸 수 있어요. 그만큼 신선도와 저장기간에 차이가 나요. 직접 재배를 하면 중간 과정이 사라지니 정말 신선한 흙냄새 나는 식재료를 제공할 수 있어요.”

김영원 셰프는 지난해 5월 제주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인 밀리우의 헤드셰프로 선임됐다. [사진=제주 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 제공]

셰프가 직접 키운 이 채소들은 제주가 품은 천혜의 식재료와 함께 프렌치 요리로 다시 태어난다. 제주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답게 손님들의 테이블 위에선 텃밭에서 자란 각종 채소와 해산물이 어우러져 제주를 형상화한다. 텃밭의 채소들이 제주산 식재료와 ‘환상의 짝꿍’이 됐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다른 직원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됐다. 김 셰프와 함께 텃밭을 가꾸며 작물을 재배하니 식재료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한다. 김 셰프는 “전에는 주문을 하면 바로 쓸 수 있었지만 이젠 (작물이) 죽어버리면 쓰지 못 하니 더 정성을 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식재료를 낭비하는 일도 줄었다. 테이블에 올릴 때도 텃밭에서 쓸 만큼만 가져오는 것이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저희가 직접 키워 손님에게 제공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은 찌꺼기를 갈아 비료로 만들어 거름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보다 자연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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