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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채식생활]“회사 회식에서 채식주의자 들키지 않으려면…?”
  • 2018.03.27.
- 2030 채식주의자들의 ‘프리 토킹’

[리얼푸드=박준규 기자]“회식에서 고기를 굽고 있으면 동료들은 내가 고기를 하나도 안 먹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더라고요.”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 어느 무리에서든 소수파에 속한다. 발언권이 당연히 클 수 없다. ‘목소리 큰 사람’이 여러모로 유리한 우리나라에선 특히 그렇다.

그러다보니 직장 동료들끼리, 친구들끼리 모이면 으레 고깃집에 끌려가기 일쑤다. 그게 회사 회식이라면 매번 도망치기도 어렵다.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고깃집에서 채식주의자 티를 내지 않으려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집게와 가위를 차지하고 고기 굽기를 전담하는 건 스스로를 지키는 ‘꿀팁’ 중 하나다.

‘채식한끼’ 모임에 참석한 청년들. 취향에 맞게 채식 메뉴를 주문했다.

채식을 지향하는 20~30대 10명이 지난 17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채식을 실천하거나 지지하는 청년들로 구성된 ‘채식한끼’라는 모임이었다. 이날 만난 청년 가운데엔 수년째 채식을 이어오는 이들도 있고, 이제 갓 입문한 초보자도 있었다. 어디서든 소수파에 속하던 채식주의자들이 이날만큼은 목소리를 높였다.

모임은 서울숲에서 가까운 한 비건(완전채식) 식당에서 열렸다. ‘비건 베이컨 버거’, ‘스파이시 머쉬룸 샌드위치’, ‘맛차차 볼’ 등 고기 한점 들어가지 않은 메뉴들이 테이블에 차려졌다. 고기 타는 냄새에 시달리며 집게를 들고 고기를 뒤집을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 요청에 따라 일부 참석자는 실명이나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청년들은 각자의 메뉴를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시도했던 비건 레시피나 괜찮은 채식 레스토랑을 공유하기도 했다.

#‘채밍아웃’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밝히는 건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채식’과 ‘커밍아웃’을 합친 채밍아웃이란 단어에는 그 어려움이 반영됐다. 채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자신이 일상에서 어떤 조직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좌우되곤 한다.

이날 모임에 나온 10명 가운데 4명은 채밍아웃을 했다고 손을 들었다.

직장인 김하나(가명) 씨는 채밍아웃을 하지 못했다. 김 씨는 “회사가 남대문 근처에 있었을 때 툭하면 남대문 시장 족발집에서 회식을 했거든요. 고통스러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기를 피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더 피곤한 일 같다”고 덧붙였다.


요가강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모(25) 씨는 ‘락토(Lacto)’ 채식주의자다. 육류, 수산물, 달걀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는다. 채식을 지향하기 시작한 건 2016년 여름 무렵부터다. 그는 “주변에 요가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채식이 유별나진 않아요. 채식을 한다고 하자 ‘아 그러냐’ 정도의 미지근한 반응이 나왔어요. 채밍아웃에 대한 부담은 없었죠”라고 했다.

‘채식한끼’라는 모임을 주도하는 박상진(33) 씨는 13년째 채식 중이다. 그는 “직장에서 막내일 때엔 ‘고기 알레르기가 있다’는 식으로 둘러대는 게 괜찮은 방법이다”며 다년간 경험에서 쌓은 노하우를 풀었다. 상진 씨는 처음엔 육류(소, 돼지, 닭)만 피하는 페스코(Pesco) 채식으로 '입문'했다.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완전 채식을 지키고 있다.
이날 모임의 테이블에 올랐던 메뉴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비건 베이컨 버거’, ‘허머스 샌드위치’, ‘맛차차 볼’, ‘스파이시 머쉬룸 샌드위치’.

#채식과_단백질
“채식하다가 쓰러진다.” 채식을 하면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 섭취가 부족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깔려있는 말이다. 채식인들이 여기저기서 귀가 따갑도록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화 주제가 채식과 운동으로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요가를 하는 박모 씨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요가는 많은 근력이 필요하거나, 근육을 키우려는 운동이 아니라서 전반적으로 얘기하긴 어려워요. 다만 요가만 두고 얘기하면 이건 일종의 ‘수련’이어서 육류에서 얻지 못하는 단백질을 다른 식물성 식품으로 보충하면 됩니다.”

만 4년째 채식을 이어가고 있는 대학원생 김세영 씨는 “채식을 실천하면서도 빼어난 운동능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많다”며 기자에게 이름을 하나 댔다. ‘유럽의 스트롱맨’으로 꼽히는 독일 보디빌더 패트릭 바부미안이다.

박상진 씨는 “운동능력과 채식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은데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파악하겠다는 생각에 비건 식단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며 몸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채식한끼’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연다. 수년간 채식을 지키는 이들도 있지만 그저 채식에 관심이 생겨서 나오는 청년들도 많다. [사진=채식한끼]

#채식과_미디어
2030 세대는 미디어에 민감한 세대다. 채식에 눈을 뜨는 데에도 미디어에서 본 콘텐츠들이 영향을 준다. 참석자들 가운데엔 육식 중심으로 짜인 식품업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았다.

완전채식주의자인 김태연 씨는 애초 ‘동물권’에 문제의식을 품고난 뒤에 채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물권은 ‘가축에게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견해’를 말한다. 태연 씨는 “가수 이효리가 채식을 한다는 걸 TV로 보고 처음 채식에 호기심이 일었고, ‘착한 식단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는 동물권에 눈을 뜨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박모 씨는 “‘검은 삼겹살’(전주MBC)이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구제역 때문에 돼지를 산 채로 구덩이에 넣는 장면이 나왔다. 충격을 받아서 돼지고기를 못먹겠더라”고 이야기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채식이 미디어에서 어떻게 비쳐지는 지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사나 방송에서 편견이 생기지 않게 채식을 다뤄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전승주 씨는 “채식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분명히 있다. ‘여성 채식주의자는 페미니스트일 것’ 같은 편견이다. 미디어가 나서서 채식주의자들도 하나의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편견 어린 시선을 확정짓지 않는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채식을 ‘경제적 특권’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언급됐다. 담박 씨는 “채식은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나 못한다는 인식도 있다”며 “나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는데, 너는 돈이 많아서 샐러드를 먹는 것 아니냐 식”이라고 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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