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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의 순리대로, 마지막까지 고통없이 만드는 푸아그라”
  • 2018.11.27.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푸아그라만큼 칭송과 비난이 함께 하는 음식은 드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다는 ‘생산 방식’ 때문이다.

거위들은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 시작되면 5000㎞를 이동하기 위해 간에 지방을 비축한다. 지극히 ‘본능적인’ 준비 과정이다. 그 시기 비대하진 거위의 간은 기름지고, 달콤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는 것을 인류는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스페인 남부 지역에서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에두아리도 소사 대표의 거위 농장


푸아그라는 일 년 중 오직 한 철에만 일어나는 ‘자연의 법칙’을 깬 음식이다. 인간은 더 많은 푸아그라를 먹기 위해 ‘가바쥬’(gavage) 방식을 만들어냈다. 거위의 목에 쇠파이프를 꽂아 엄청난 양의 곡식을 먹이는 방식이다. 고작 15일간의 강제 서식을 통해 거위의 간은 최소 8배 이상 커진다. 이 음식이 바로 캐비어, 트러플과 함께 ‘세계 3대 진미’가 됐다.

‘제 3의 식탁’을 쓴 세계적인 스타 셰프 댄 바버는 2008년 테드 강연에서 “푸아그라만큼 비난받는 음식도 없다”며 “셰프들이 봉착하는 문제는 푸아그라의 기막힌 맛에 있다. 심지어 푸아그라는 같이 요리한 모든 음식조차 맛있게 만든다”고 언급했다.

푸아그라는 식탁에 올리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에게 어느 정도 죄책감을 안기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댄 바버 셰프는 “스페인에서 만나게 된 한 농장의 푸아그라에서 요리의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그곳엔 모든 ‘인위’를 거부하고 ‘자연의 방식’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농장이 있다. 최근 열린 ‘서울고메 2018’에서 전 세계가 주목한 푸아그라를 만드는 스페인 남부 ‘라 파테리아 데 소사’ 농장의 에두아르도 소사 대표를 만났다.

에두아르도 소사 대표는 “푸아그라는 자연을 존중하면, 그에 대한 대가로 받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 ‘자연의 법칙’ 대로 만드는 푸아그라

스페인 남서부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지역은 에두아르도 소사 대표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풍요로운 거위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소사 씨는 푸른 초목 위를 씩씩하게 거니는 거위들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얘들아, 안녕! 잘 있었어?”

그는 “거위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에 익숙해져야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사 대표의 작은 농장은 지난 몇 해 사이 ‘푸아그라의 본고장’인 프랑스는 물론 뉴욕, 두바이, 일본 등 전 세계의 스타 셰프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세계 최대 식품 박람회인 시알 파리에서 혁신상(2006년)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셰프 댄 바버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됐다.

에두아르도 소사 대표의 농장에서 거위를 기르는 방식은 말 그대로 ‘자연 친화적’이다. 그의 농장엔 ‘공장식 축산’도, ‘가바쥬의 잔인함’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연의 법칙’대로 놓아두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무화과와 올리브, 도토리는 물론 각종 야생초가 자라는 소사 대표의 푸른 농장은 ‘거위들의 에덴동산’이라고 불린다. 사실 ‘엑스테레마두라’는 ‘가파른 땅’이라는 뜻이다. 소사 가문은 대대로 거위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 척박한 이 땅을 풍요로운 농장으로 가꿨다.

소사 대표의 농장에선 모든 것이 거위들에게 맞춰져 있다. 말소리와 발소리를 낮추는 것은 물론 울타리를 설치한 방식도 보통의 농장과는 다르다. 다른 농장들은 기르는 동물을 가두기 위해 담장을 치고 농장의 안쪽에 전류를 흐르게 하지만, 소사의 농장은 바깥쪽으로만 전류를 흐르게 했다.

“작은 방목장에 갇히면 거위가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에요. 코요테와 같은 포식자로부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바깥으로만 전선 울타리를 쳐둔 거예요.”

자연에 맡기는 이 모든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파테리아 데 수사가 1812년부터 시작한 방식이다. 소사 대표는 전통의 방식을 묵묵히 이어왔다.

“푸아그라를 만들려면 자연에서 태어난 거위가 필요해요. 부모 밑에서 자란 새끼여야 하죠. 사람의 손에서 자란 경우에는 귀소본능을 잃어버려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위가 귀소본능을 찾아 자연스럽게 지방을 축적하도록 돕고 있어요. 태어난 곳이 집이기 때문에 거위는 여길 떠나도 집으로 돌아와요. 인간과 같아요. 여기에선 풍족하게 살 수 있단 걸 알기 때문에 항상 집으로 돌아오죠.”

소사 대표의 농장에선 거위들이 떠났다가도 돌아오고, 이곳에 살고 있는 거위들이 또 다른 야생 거위들을 불러들인다. 그는 “거위의 본능은 행복을 위해 그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찾는 것”이라며 “이곳에서 길들여진 거위들과 야생 거위들이 짝을 이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소사 씨의 농장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없이…최면을 걸어 거위를 보내는 이유

소사 대표의 농장에선 11월 중순에서 12월 사이, 처음으로 추워지는 계절에만 푸아그라를 생산한다. 도축 시기가 다가오면 거위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편안하게 진행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마지막 순간은 의식과도 같다.

“달이 뜨지 않는 날 밤에 도축을 해요. 이런 밤에 거위에게 최면을 걸어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도록 하죠. 이렇게 좋은 자연에서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다가 마지막에 극도의 고통을 받는다면 결국 다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모두가 고통받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것이 우리에겐 아주 중요해요.”

에두아르도 소사 대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푸아그라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우리에겐 삶 자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푸아그라는 1년에 1000마리 정도다. 1년 내내 찍어내듯 생산하는 대부분의 산업용 푸아그라와는 다르다.

“푸아그라를 먹으려면 거위의 생애 주기를 기다려야 해요. 가바쥬처럼 15일간 기계적인 방식으로 산업용 푸아그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1년을 기다려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생산한 푸아그라는 늘 곁에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기다림의 음식’이자 자연이 준 선물이다.

“올 한 해도 고생했다는 의미로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어요. 부모님은 우리가 푸아그라를 만들지만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걸 알길 바라셨어요.”

소사 씨의 농장에선 달이 뜨지 않는 밤 거위를 도축하고, 최면을 걸어 그 순간을 기억하지 않도록 한다. 마지막 순간에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한 방식이다.

소사 가문의 농장의 모든 환경과 조건은 그가 만드는 푸아그라의 맛과 질을 결정했다. 댄 바버 셰프는 그의 푸아그라에 대해 “평소 비유를 좋아하지만 어떤 말로도 비유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며 “인생 최고의 푸아그라였고, 그동안 먹은 것은 푸아그라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고 극찬했다. 최상급의 올리브와 무화과, 허브를 먹고 자란 거위들은 소금, 후추, 기름은 물론 어떤 향신료를 넣지 않아도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

많은 다국적 기업이 에두아르도 소사 대표의 농장을 방문했다. 그의 생산 방식을 배우고자 견학도 했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사 농장의 방식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이 농장에선 오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도 푸아그라를 먹어봤어요. 뛰어나게 맛있는 상품도 많았지만, 생산방식을 알고 나서 전혀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건 역사와 자연에 대한 모욕이에요. 우리에겐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 이건 우리에게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예요. 우리는 거위를 학대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기 때문에 항상 편한 마음으로 푸아그라를 먹을 수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푸아그라는 우리가 자연을 존중하면 그에 대한 대가로 받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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