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항암신약신치료개발사업단 부단장, 위암센터 종양내과전문의 김학균 |
백신이 암치료에 유용하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정상세포에는 존재하지 않고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항원은 중앙면역관용(central tolerance) 과정을 거쳐 인체 내에서 소멸되지 않아, 이를 인지하는 T 세포를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요법을 통해 암치료에 활용 가능함이 입증되고 있다. 암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 것이다.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대표적인 항원은 신항원(neoantigen) 이라고도 불리우는 유전자변이(mutation) 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강한 결합력을 가지는 T 세포 수용체를 가지는 T 세포가 환자에 일정 수 존재하게 되고, 암백신으로 이와 같은 T 세포 수를 늘일 수 있다. 그런데 암환자들마다 유전자변이가 제각각이라 다양한 유전자변이를 모두 타겟하는 하나의 암백신 품목을 개발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각 환자별 개인맞춤형으로 mRNA 암백신을 만들어 투여하는 전략이 대표적으로 실효적인 방법으로 대두되고 있다. mRNA 백신은 인체세포에 들어가 항원 단백질을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게놈에 통합되지 않고 빨리 분해되어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mRNA 가 불안정하고 인체내 전달 효율이 낮은 것이 문제였는데, 지질나노입자 및 리포플렉스(lipoplex) 의 기술적 발전으로 해결되어 COVID-19 백신에 적용되었다. 한편 치료용 암백신은 수십 개 신항원을 동시에 타겟해야 임상적인 효능을 기대할 수 있는데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생산공정의 효율이나 신축성 면에서도 mRNA 플랫폼은 가장 경쟁력 있는 기술 중 하나이다.
바이오엔택이나 모더나 모두 COVID-19 mRNA 백신 제작 플랫폼을 거의 그대로 암백신 임상 시험에도 사용하고 있다. 약물전달체로 사용하는 지질나노입자도, 투여 횟수가 많기는 하나 대체로 그러하다. 아쉽게도 국내 지질나노입자의 원천기술 수준은 해외 선도기업들 수준에는 못 미쳐, 연구개발 투자의 필요가 큰 현실이다. 대신 mRNA 백신이 치료용 암백신으로 독자기술로 임상개발 된다면, 그간 감염병 백신 개발에 대한 국가 연구개발투자가 또 다른 열매를 맺는 결과가 된다.
바이오엔택의 개인맞춤형 mRNA 백신인 RO7198457-리포플렉스(lipoplex) 와 면역관문억제제의 병용요법은 악성흑색종 환자의 35% 에서 종양의 크기를 유의하게 줄이는 효능(부분관해) 을 보였다. 펩티드 암백신도 그렇지만, mRNA 암백신도 항암제 치고는 부작용이 경미한 편이다. 이런 낮은 독성은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활용 시 큰 장점이 된다. 모더나의 개인맞춤형 백신인 mRNA-4157/V940-지질나노입자는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요법으로 악성흑색종의 재발을 44% 감소시켰다. 작용 기전 상 종양세포 부하가 적은 경우 보다 적합한 치료임을 시사한다.
개인맞춤형 치료제의 임상개발은 전통적인 규제의 틀을 벗어나는 문제가 있다. 동일한 고민을 먼저 한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여 해법을 찾는다면, 첫 단계에는 여러 환자에서 일정 빈도 이상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공유신항원(shared neoantigen) 을 대상으로 암백신을 개발하여 안전성을 입증하면서 문제점들을 찾아 개선해 가고, 다음 단계로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된 공유신항원 암백신과 동일한 생산공정으로 염기서열만 각 환자 유전자변이에 따라 바꾼 맞춤형 백신들을 생산하여 동일한 하나의 품목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단계를 밟는 것이 실제적일 것이다.
바이오엔택과 모더나는 자동화된 공정을 구축하여 개별 품목 단위가 아닌 공정 단위로 승인받아 개인맞춤형 mRNA 암백신을 6주 이내로 생산하여 활발히 임상개발 중인 반면, 우리는 mRNA암백신 임상시험 계획승인신청을 준비 중인 국내 기업이 이제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쉬운 일은 아니나, 공동의 노력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규제의 합리화에 속도를 낸다면 관련 국내 기업 투자도 활발해 질 것이다. 항원 선택 알고리즘을 개발·검증 하는데도 실제 백신치료를 받은 환자에서 얻어지는 데이터가 중요하므로, 어쨌든 임상시험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규제과학 분야의 한·미 협력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유전형(HLA type) 을 가진 각 사람에 투여되는 각각의 항원들의 면역원성을 예측하고 치료제를 최적화하는 것은 제반 T 세포 수용체 기반 첨단의약품 개발에 공히 필수적인 핵심 미래기술이다. 그런데 이는 암백신 임상시험을 통해 얻어지는 자료 외에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인공지능과 합성생물학의 첨단기법이 동원되어야 하는, 국제적으로도 아직 미완성 단계의 고난이도 기술이다. 또한 비전형(trans-spliced) 면역펩티드 등 새로운 암특이적 항원 후보를 새로 찾는 연구도 경쟁력 있는 백신 개발에 밑거름이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산·학·연·병의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연구개발 만으로 외국의 선도기업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힘겨운 현실이다. 임상시험도 쉽지 않다. 공유신항원 암백신 임상시험의 경우 해당 암백신에 적절한 유전자변이 및 유전형(HLA type) 을 가진 암환자를 선별해 등재시키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종합적으로 볼 때 치료용 암백신 개발은 일정 기간 정부 지원의 필요성이 크고 한편 파급효과도 큰 영역이다. 물론 국립암센터도 국내기업 지원에 다각도로 애쓰고 있다.
그럼 신항원 암백신이 실제 암환자에게 피부로 와닿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실제 종양내과 진료 현장에서 많이 활용하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결과 약물처방 가능 유전자변이(clinically-actionable mutation) 에 해당하지 않는 유전자변이 정보라도 신항원 암백신은 모두 치료 활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치료 옵션을 현저히 확대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병용요법으로서 항원비특이적인 치료인 면역관문억제제의 효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항원특이적 면역치료로서의 임상적인 가치로 인해, 암환자 특히 희귀암 환자 치료에 있어서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크다.
해외에서도 아직 승인된 개인맞춤형 치료용 암백신은 없으므로, 국제 시장 선점 및 고가의 약제 수입에 대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도 임상개발을 서둘 필요가 있다. 장래 신종 감염병이 창궐하는 경우에도 플랫폼을 공유하는 mRNA 암백신을 국내 기업들이 활발히 임상 개발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국가적 대응 역량이 향상될 것임도 불문가지이다.
국립암센터 항암신약신치료개발사업단 부단장, 위암센터 종양내과전문의 김학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