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랭 드롱’이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스로 삶을 마감할 권리라 불리는 ‘안락사’ 또는 ‘존엄사’는 육체적으로 건강하지만 우울증이나 생계비관 등의 정신적인 문제로 삶을 마감하는 ‘자살’과는 달리,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이 육체의 고통을 마감할 수 있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말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면이 있지만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안락사 또는 존엄사는 주로 유럽 등 선진국에서 법제화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나라들에서도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본인의 의사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사용 등으로 임종 과정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엄격한 절차를 따르는 존엄사가 시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민 10명 중 7명이 안락사 허용을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또는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인데 이는 2008년과 2016년 국민 절반 정도가 안락사를 찬성한 데 비해 1.5배 높아진 수치다.
안락사는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와 달리, 의료진이 본인 의사로 사망을 택한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약하는 방법이며, ‘의사 조력 자살’은 의사가 처방한 치명적인 약물이나 주사를 받아 환자가 시행하는 안락사로, 둘 다 우리나라에선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 놀랍다.
얼마 전 환자 본인이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력 존엄사’ 법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담당 의사의 도움으로 삶을 마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조력 존엄사를 원하는 사람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의료와 윤리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심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앞으로 각계각층에서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겠지만 결국 채택 여부느 국민의 여론에 달려 있다.
앞서 서울대병원의 설문조사에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조사에서 안락사 제도화 찬성 이유 중 ‘남은 삶이 무의미해서’(30.8%)가 가장 많았다. 또한 ‘가족에게 고통과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14.8%)나 ‘의료비와 돌봄의 사회적 부담 때문에’(4.6%) 등을 이유로 꼽은 응답자도 많았다. 신체적 이유가 아니라 정신적 이유와 사회 안전망 미비 등의 요인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2018년 연명의료 결정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사전 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등록한 사람은 각각 132만여명, 9만여명이지만 실제로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 결정을 내린 사람이 22만명에 육박한다. 초고령화에 맞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있지만 ‘가진 것 없는 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우선되고 안락사가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