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의 상급 종합병원인 가천대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전문의 충원전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병원 측은 내년 상반기 전공의 1년차 모집 과정에서 소아청소년과 지원자는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밝혔다. 어제는 분당의 종합병원인 분당차병원이 소아과전공의가 없어 입원이 안 되니 응급실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글이 병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맘카페 등 엄마들의 SNS가 들끓었다. 지방병원은 말할 것도 없다.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이른바 ‘돈 안 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비인기과의 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기피속도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공개된 ‘진료과별 전공의 지원 현황’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지난해에는 38%로 급락하더니 올해는 27.5%까지 떨어졌다. 흉부외과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전공의 지원율이 50∼60%대에 그쳤고 산부인과는 2018년부터 미달로 돌아섰다. 드라마 ‘하얀거탑’에서처럼 십수명의 후배들을 거느리며 ‘칼잡이의 카리스마’를 전수했던 시절은 ‘라떼는 말이야의 전설’이 됐다.
반면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 인기과는 ‘상한가’이다. 지난해 전공의 지원율 1위 진료과였던 재활의학과의 지원율은 202.0%에 달했고 2위는 정형외과(186.9%), 3위 피부과(184.1%), 4위 성형외과(180.6%), 5위 영상의학과(157.2%) 순이었다.
전공의가 1명씩이라도 있는 흉부외과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전남대병원, 부산대병원까지 전국에 5개 병원밖에 없다. 지방에서는 소아심장 수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온 걸까. 하지만 누구라서 ‘힘들고 돈도 안 되고 인정도 못 받는’ 분야를 자진해서 지원하겠는가.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배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사명감에 기피과에 지원했던 의사들마저 이후에는 모발이식이나 피부성형 같은 분야를 다시 배워 의원으로 개업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응급의학과를 전문의인 한 의사는 “인력 부족으로 잦은 야근도 힘들지만 고위험 수술 결과에 대한 잦은 소송 등도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며 “어차피 병원에서도 우리 과에 대해 희생만 강요할뿐 적극적인 개선책도 없어 최근 모발이식 술기를 배워 진로를 바꿀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책은 뭘까.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공청회를 열어 공공의대, 의사 정원 확대, 고위험·고난도 수술과 분만·소아 치료 등 필수의료 분야에 공공정책수가 도입 등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지만 의료계는 시큰둥하다. 저절로 의사들의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이 늘리가 없다. 결국 획기적인 인센티브뿐 아니라 의료계에서 요구하는 고난도 수술 시 소송 부담 경감 같은 유인책을 줘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의료계가 주문같이 외는 ‘기승전 수가’라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 위험도 대비 너무 낮은 수가는 ‘필수의료 재건’이라는 명분으로 과감한 보상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생명의 최전선에 있는 필수의료인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외과 등은 ‘대리수술’ ‘유령수술’ ‘쇼닥터’ 같은 오명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먼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등불 같은 존재다. 필수의료의 붕괴 속도를 보면 시간이 없다. 그들이 더는 사명감을 잃지 않고 연구와 술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